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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털도사 : 백팔요괴편 (1998)


 

오렌지 소프트에서 만화가 이두호씨가 그린 만화를 원작으로 한 1998년 발매한 롤플레잉 게임입니다.
백팔요괴편은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지만 게임과는 스토리 라인이 전혀 다른 작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패키지 일러스트의 머털과 게임 내 일러스트의 머털이의 외모 차이가 심합니다만, 마지막 스탭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일러스트도 이두호씨는 포스터만 담당하셨고 게임 내 일러스트 자체는 다른 스탭이 그렸다고 합니다.

누덕도사의 제자로써 누덕산에서 살고 있던 머털이는 누덕도사의 갑질과 폭행에 못이겨 우발적으로 친구인 붉은 새 다비와 함께 하산하자마자 내 선녀 아리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인트로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적인 색채와 인터페이스, 스토리가 특징입니다.
훈장, 무당, 보부상(부보상), 몽룡과 춘향 등 한국, 관련 고전에 관련된 명칭과 이름을 가진 NPC가 등장하며 12지신과 견우와 직녀같이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같은 동아시아에서 유명한 설화를 게임 설정에 맞춰 각색한 부분도 엿볼 수 있죠.

도트는 물론이고 캐릭터의 애니메이션이 상당히 깔끔합니다.
국산 게임에 많이 활용되었던 게임 기획자가 직접 NPC로 등장하거나 과거 국산 게임이나 만화에서 볼 수 있었던 캐릭터들이 자기들이 게임 캐릭터라는 것을 자각하는 듯한 대사도 존재합니다.  

전투의 완성도도 높습니다. 리얼 턴 타임 시스템을 표방하고 있으며, 전투가 벌어지면 가만히 있을 때 행동을 위한 타임 게이지가 모입니다. 
 공격, 아이템 사용 등 모든 행동에는 제각각 다른 양의 게이지가 필요합니다.

강력한 공격일수록 필요 게이지는 자연스레 커지죠. 
하지만 스피디함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데, 게이지가 부족한 초반 전투에서는 답답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게이지가 빠르게 찬다면 상관없는데 천천히 차는 데다가 적 하나하나가 공격 한 방에 쓰러질 만큼 약하지도 않습니다. 초반부라고 적이 약할 거라 단정하고 생각없이 덤벼들다가는 뜬금없이 게임 오버 화면을 맞이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다행히 이런 부분은 레벨이 높아지면서 조금씩 해소됩니다. 



본편이 짧은 편이라 출현하는 적의 종류가 다양하진 않습니다.
색만 바뀐 채 능력치만 높아진 상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예가 바로 슬라임이죠.

 

다른 게임과 같이 슬라임을 우습게 보면 안됩니다.

롤플레잉 게임에서 보통 슬라임은 초반 경험치 공급원이라고 여겨지는데 여기서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초반부터 조우하는 일반 적들중 손에 꼽을 정도로 강합니다. 아군보다 적의 수가 같거나 많은 경우에는 조금은 긴장하면서 임하는 것이 좋습니다.

보스를 제외한 적들은 제각기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아군도 마찬가지입니다.

속성을 바로 파악할 수 있는 적도 역시 슬라임이죠.

 

속성 공략에 유리한 캐릭터는 주인공 머털입니다.

머털은 세계 곳곳에 숨겨져있는 12지신 부적으로 교체해가면서 다채로운 공격이 가능합니다.

적의 속성에 따라 부적의 조합을 맞춰줘야하며, 나머지 캐릭터는 속성이 정해져있는 터라 적과의 상성을 잘 생각하면서 싸워야 합니다. 똑같은 속성의 기술로 공격하면 오히려 HP를 회복하기 때문에 적들의 속성을 파악하는게 전투의 핵심 포인트.
반면, 적들이 같은 속성으로 공격해오면 데미지만 적게 받을 뿐 HP는 회복되지 않습니다.

할거면 공평하게 회복도 되게끔 하면 좋을텐데요.


경험치는 파티원이 사이좋게 일정량씩 나눠먹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가 실행한 커맨드에 따라 개별적으로 획득합니다. 머털과 아리에게는 회복 스킬이 있는 데다가 적에게도 먹히기 때문에 잘 활용해서 레벨 노가다가 간단한 편이죠. 초반에 높여두면 게임 진행이 더 원활해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일부 기술들은 레벨업을 하면서 강화되기도 하는데 위력 강화이 되는 반면 필요 게이지량도 늘어납니다.

게임을 평범하게 진행한다면 레벨이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그칩니다.

그런데 종반에 합류하는 단치우의 최종 스킬은 무려 레벨 51에 습득합니다. 최종보스인 백팔요괴마저 쉽게 정리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데 레벨 노가다에 대한 보상 같은 걸까요.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설정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성능은 좋지만 화려한 이펙트 같은 건 없습니다.

이외로도 게임내 사용 가능한 스킬 자체는 다양하지만 적, 아군 불문하고 이펙트 중복이 많아서 보는 맛은 떨어집니다.

 


마을에서는 무기를 비롯해 일종의 악세사리 개념인, 마기, 도구를 구매할 수 있습니다.

도구는 마을뿐만 아니라 주요 이벤트 지역에 위치해있는 보부상에게도 구매할 수 있습니다.

무기와 마기는 캐릭터마다 하나씩 장착할 수 있고 나머지 칸에는 전투에 사용할 아이템을 채워줄 수 있습니다.

소모 아이템은 한번 사용하고 일일이 다시 장착시켜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는 점이 단점입니다.

 

초반 도구 가격이 저렴하지 않다는 점이 난이도 상승에 한몫 합니다.

돈은 전투에서 획득하는 것보다 이벤트를 거치면서 NPC가 주거나 상자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돈이 훨씬 많습니다.

여유가 생겼다고 생각없이 마구잡이로 회복 아이템을 사고 소비하면 나중에 심하게 쪼들릴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템을 구매한 금액 그대로 판매할 수 있다는 부분입니다.

 

마을마다 존재하는 훈장에게는 게임의 배경을 알 수 있고 의원에게는 무려 공짜로 무한 회복이 가능하다.

레벨업 노가다를 할 때는 마을을 끼고 하는 것이 필수 요건이나 마찬가지.

 

중간에 이탈해서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캐릭터가 몇몇 있는데 미리미리 세이브를 해놨다가 떠나는 구간에 맞춰 무기나 아이템을 떼놓는 것이 좋습니다. 


예전 게임답게 불친절합니다.

바로 캐릭터의 무기나 마기, 기술 등 기본적인 설명이 어디에도 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기본적인 효과 정도는 알 수 있어야 하는데도 직접 착용하거나 사용하기 전까진 이게 뭐하는 물건인지 결코 알지 못합니다. 무기와 마기를 장착할 때에 능력치가 어느 정도 변화가 있는지 수치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도 아닙니다.

레벨업을 해서 막 얻은 기술이 공격 기술인 줄 알고 시전했다가 적이 회복하는 등 적에게 유리한 상황이 발생할 때 짜증이 확 솟아오르더군요. 

게임 도중에 얻을 수 있는 한님의 나라 지도는 세계관을 한눈에 살펴보는 것은 물론이고, 지나왔던 곳을 전부 클릭 한번으로 이동할 수 있는 귀중한 아이템입니다.
저는 활용하는 방법을 모르고 위치 확인용으로만 쓰면서 일일이 적들과 치고 박으면서 힘겹게 지나왔었는데 알고 나서 상당히 허탈했습니다..


후속작에 대한 복선도 적지 않게 배치하면서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도 높이는데 성공했습니다.  
후속작의 부제이기도 한 천년의 약속혈미륵이 직접적으로 언급되기도 하고 갈매와 구모소의 찝찝한 마지막 행방과 엔딩에서 멀어져가는 머털을 파란 피를 흘리며 노려보는 의문의 남성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후 천년의 약속이 발매되면서 모든 복선이 회수되죠.


스토리의 치밀함과 마지막 반전까지 기승전결에 있어서는 상당히 탄탄한 편이면서, 얼마 안되는 지극히 한국적인 롤플레잉 게임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생각합니다.

전통적인 분위기를 잘 살린 마을과 정승 등의 디테일한 묘사도 잊지 않았고, 게임내 분위기의 완급조절은 수준급이죠. 기회가 있으면 한번쯤 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