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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다보르 슈케르, 다리오 스르나에서 루카 모드리치, 이반 라키티치, 마리오 만주키치 등으로 이어지는 스타플레이어들을 여럿 배출했고 체크무늬가 인상적인 크로아티아 축구 대표팀은 이전 국제 대회를 비롯해 가장 최근에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무려 결승에 오르며 전 세계 축구팬들을 놀라게 한 바 있습니다.

 

사실 크로아티아 축구 대표팀은 대한민국과 여러 번 맞붙은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국내 팬들에게도 생소한 팀이 아닙니다. 선수들의 이름값 면에서는 차이가 심하지만 아이러니하게 크로아티아는 대한민국을 상대로는 고전을 면치 못했기에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살짝 애매한 강팀이라는 인식이 잡혀있는 것 같아요.

 

이번 러시아 월드컵 예선 과정부터 크로아티아의 여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16강 덴마크전, 8강 개최국 러시아전, 4강에서 잉글랜드전, 전부 연장 접전 끝에 얻어낸 값진 승리였지만 체력적인 열세라는 악재가 발생한 데다 하필 결승 상대는 대회 기간 내내 압도적인 전력을 자랑하던 프랑스였습니다. 결국 크로아티아는 2-4로 석패했고 유럽의 작은 나라 크로아티아의 기적은 준우승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아쉬운 결과였지만 크로아티아라는 팀을 보다 확실하게 알릴 수 있었던 의미 깊은 대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로아티아 축구의 시작

 

로아티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해있던 19세기 말, 리예카에 공장을 짓기 위해 크로아티아로 건너온 영국인들에 의해 크로아티아 축구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낯선 땅에서 자유 시간을 이용해 축구를 즐겼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후 이들은 크로아티아 동부에 위치한 도시 주파나에 도착했고, 공장을 세워 지역 사람들을 고용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젊은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1896년, 경기 규칙 등을 수록한 크로아티아 최초의 축구 서적이 자그레브에서 발행되면서 축구란 스포츠가 크로아티아 땅에 더욱 알려지기 시작했고 1903년, 자그레브를 연고로 한 크로아티아 최초의 축구 클럽이자 유고 슬라비아 왕국에서 이름을 떨치게 될 HAŠK가 창단됩니다.

 

HAŠK가 설립된 20세기 초, 크로아티아의 축구 관계자들은 국가적인 축구 연맹을 설립하고 싶어 했지만 정치적인 상황이 발목을 잡아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지요. 이윽고 1909년, 크로아티아 스포츠 연맹이 설립되면서 더욱 가능성을 높였고 3년 뒤인 1912년 6월 13일, 마침내 축구를 담당하는 축구 부서가 신설되면서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구 유고 슬라비아 영토 / HAŠK 구단 로고

 


 

역사적인 격동의 시기와 함께 찾아온 수많은 변화

 

이후 크로아티아 축구계는 격동적인 역사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반복하게 됩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면서 이후 유고 슬라비아 왕국의 일원이 되었고 1919년 자그레브에서 유고 슬라비아 축구 연맹(Jugoslavenski nogometni savez)이 설립되면서 크로아티아의 축구 클럽들은 유고 슬라비아 퍼스트 리그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후 1929년에는 자그레브와 베오그라드의 하위 연맹 간의 마찰로 인해 유고 슬라비아 축구 연맹이 해체되었지만 다음 해인 1930년 현 세르비아의 수도인 베오그라드에서 재건되었습니다. 다만 연맹 공식 명칭을 세르비아어 명칭인 Fudbalski savez Jugoslavije로 바꾸었습니다. 베오그라드를 근거지로 삼아 1939년까지 전국 리그를 조직하는데 힘썼고 이때 크로아티아의 바노 비나 지방이 유고슬라비아 왕국 내의 새로운 행정 구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같은 해 8월 6일 크로아티아 축구 연맹(이하 NHS)이 바노 비나 지방의 축구 기구로써 설립되었고,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의 구단들은 베오그라드 위주의 리그 집중화에 반발하여 본인들만의 리그를 창설해 유고 슬라비아 리그를 떠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는 리그 내의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구단의 수를 늘리겠다는 약속으로 철회되었지요.

 

이후 1940년 NHS는 최초의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를 주최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크로아티아는 유고 슬라비아에 속해있었기 때문에 FIFA에게 공식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습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1941년 유고 슬라비아 왕국이 해체됨에 따라 유고 슬라비아 리그도 중단되었지만 다소 평화로웠던 기존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방면에는 파시즘을 지향하는 크로아티아 독립국(NDH, Nezavisna Država Hrvatska)이라는 국가가 세워졌습니다.

 

크로아티아 독립국 영토를 나타낸 지도

CFF는 다른 분쟁 지역과는 달리 평화를 유지하면서 독자적인 축구 리그를 진행했으며 참가 클럽은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팀들이 참여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유고 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에 속하게 된 크로아티아는 CFF가 아닌 베오그라드에 설립된 유고 슬라비아 축구 협회가 축구 최고 기관이 되었습니다.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 NHS의 탄생

 

1945년, 새롭게 자리 잡은 공산주의 정권은 파시스트 사상을 주체로 한 리그에 참여했다는 죄를 묻기 위해  전쟁 기간에도 활동을 지속했던 모든 구단들을 해산시키는 포고령을 선포합니다. 자그레브를 연고로 한 기존의 HAŠK, HŠK 그라잔스키 등과 같은 구단들이 한순간에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현재 온전하게 자신들의 유고 시절까지 포함하여 현재까지 역사를 꾸준히 유지하는 구단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타 클럽과는 달리 스스로 활동을 중지한 뒤에 반 나치 민병대에 가담했던 하이두크 스플리트 뿐입니다. 현재 크로아티아 대표 명문인 디나모 자그레브는 HŠK 그라잔스키의 역사를 계승하는 클럽이지만 엄연히 재창단된 구단인 부분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지요. 

 

1923 그라잔스키  / 1954-55 하이두크 스플리트 

이 두 구단들은 이후 유럽에서도 막강한 전력을 과시하며 세르비아의 츠르베나 즈베즈다, FK 파르티잔과 함께 유고 슬라비아 빅4 구도를 형성했고 꾸준한 성적을 올렸습니다.

특히 디나모 자그레브는 현재 유로파리그(직전 UEFA 컵)의 전신인 인터-시티스 페어스 컵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이는 유고 슬라비아 최초이자(1990-91 시즌, 츠르베나 즈베즈다가 무려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 크로아티아 구단 이 차지한 유일무이한 유럽 대항전 우승 기록입니다.

 

이후 탄탄대로를 걷는 듯 했지만 유고 슬라비아가 다시 분열되기 시작하면서 과열되기 시작한 정치적인 상황과 분위기는 축구 경기장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습니다. 유고 슬라비아와 네덜란드간의 A매치가 열린 날에는 크로아티아 축구팬들은 네덜란드를 응원했을 정도로 적개심을 표출했고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구단간의 맞대결은 조용히 넘어가는 일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후 1990-91 시즌 종료 후 유고 슬라비아 대회 출전을 포기하기에 이릅니다.

 

1990년 5월 13일 츠르베나 즈베즈다 vs 디나모 자그레브 경기에서 벌어진 서포터간 충돌

 

1991년 10월 8일 크로아티아가 공식적으로 주권 독립을 선언했으며 이후 크로아티아 축구 연맹은 마침내 1992년 7월 3일에는 FIFA에, 1993년 6월 17일에는 UEFA에 크로아티아라는 국명으로 가입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NHS는 공식적으로 크로아티아만의 축구 발전을 위해 현재까지 힘쓰고 있는 셈이지요.

 


과거의 현재의 레전드(다보르 수케르 / 루카 모드리치)   

크로아티아는 러시아 월드컵 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짧은 역사에 비해 높은 성과를 올린 팀입니다. 본래 구(舊)유고 슬라비아 연방에 속해있던 크로아티아를 포함한 6개 국가들은 내전에 휘말리면서 94년 월드컵에는 불참했으나 바로 이어진 1998 월드컵에서 크로아티아 공화국이라는 국명으로 첫 출전하게 됩니다.

 

첫 출전에 만족하지 않고 슈케르를 중심으로 하여 인상적인 경기력을 대회 기간 내내 유지하면서 대회 3위까지 달성합니다. 작지만 강한 크로아티아라는 팀을 세계에 똑똑히 보여주었고 이후 현재까지 각종 대회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이뤄내면서 유럽의 중상위권 강호중 하나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분열되는 위기에 여러 차례 직면하면서도 끈기있게 정체성을 잃지 않고 축구를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를 간직해온 연맹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이러한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